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3.09.15 19:44

2000.12.17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를 maupu, 그리고 문라이트님과 함께 보다.

영화의 모양새는 점점 다양해진다. 국가 간의 합작형태 영화가 느는 가운데, 이번 <순애보>가 보여준 한일 양국 간의 정서와 시스템의 결합은 영화보기의 새로움을 준다. 일본말을 듣고 두 국가 간의 배우가 만나는 걸 본다. 일전에도 합작은 있었지만 정상의 배우가 출연한 본격적 메이저 영화는 없어, <순애보>엔 더욱 신선감이 있다.

<순애보>는 나른한 일상에서의 작은 욕망을 말한다. 우인(이정재)은 제빵보조강사 미아(김민희)와 인터넷에서 발견한 아사코에 대한 짝사랑을 품고, 아야는 인상적인 죽음을 갈망한다. 이것은 이들의 유일한 현재적 삶의 의미가 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무기력이다. 기댈 것 없음과 처한 현실의 정체, 그래서 별로 욕심없음이 뒤섞여 영화는 한없이 나른하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에서 아주 매력적인 영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상업성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대신 지나치게 관객과 숨바꼭질하기를 원한다. 내가 이거 이거 이거를 숨겨놓았으니까 찾아봐라 하는 식으로. 수많은 장치와 코드가 소풍에서 많이 해본 보물찾기의 종이처럼 숨어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네마자데, <택시드라이버>의 트레비스와 파생되는 호모비디오쿠스, 촬영감독인 홍경표 카메오의 단순코드들을 즐기다, '동사무소 직원=나른함, 알래스카=신비
의 공간' 같은 이젠 더 이상 신선함을 바랄 바 없는 컨벤션이 되버린 장치를 읽어냈을 때쯤, 감독의 그 속내가 뻔히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 좀 질리는 맛이 있다.

쿨하진 않지만 다치바나 미사토의 풋풋한 신선함, 이정재의 물 흐르는 듯한 연기에서의 나른함, 권태감은 제법 잉크가 다 마른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상업적 부담을 벗어난 의식적인 화법은 좋았지만 그것이 너무 읽혀지기를 바랐다는 점에서 <순애보>는 개인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작품이다. [★★★]  

 

※덧붙이기
아야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오스기 렌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충실하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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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3.09.15 19:20

2000.9.4
<포스트맨 블루스>를 본 후, 정동길을 포스트맨처럼 달려 <시월애> 시사회에 가다.

지하철 광고속의 우수어린 전지현과 강렬한 레드때문에 보고싶던 <시월애>는 일단 일차적인 관람동기를 만족시킨다. 여전히 귀엽게 섹시한 전지현의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이 공들인 영상미의 극치에 폭 젖어들 때 영화는 간절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동감>과 비교되고 너무 아름다운 영상에 지쳐버릴 때 영화는 시들해진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나중에서야 사랑을 깨닫는 <시월애>는 <동감>과 같다. 그러나 <시월애>가 시간을 갖고 제대로 놀 줄 모를 때 <동감>에서의 감동을 떠오르게 한다.

<시월애>가 아무리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만족시키는 편지, 눈, 비, 강아지, 관상용 물고기, 예쁜집 등으로 포장을 해도 <시월애>의 밋밋한 얘기를 다 덮을 수는 없다. 사람의 시각은 금방 질려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러브레터> 반만이라도 시간을 다룰 줄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이야기가 굴곡있게 파동을 일으켜나갔다면 <시월애>의 영상과 내러티브는 "윈-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

※덧붙이기
1. 시사회장에서 나오다 <시월애> 촬영을 하신 홍경표 촬영감독을 보았다. "영상이 참 좋더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이미 그는 관객에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는 스타가 되어있었다. 마침 나에게 디지털카메라가 있어 찍어왔는데 긴장해선지 잘 나오진 않았다. <시월애>에서 개인적으로 맘에드는 영상은 전지현이 교통사고를 당할 때 미니카세트가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CF적인 장면과 재미난 강아지시점 촬영장면이다.

2. <시월애> 옥의 티: 전지현의 편지 글씨체가 다르다. 전지현이 직접 쓰는 걸 보여주는 장면의 것은 좀 인간적인 글씨인데 반해 전반부에 나온 거는 잘 쓴 여성체다. 그리고 전지현이 즐겨가는 지하철 지상역에서의 노점상. 전철내에서 물건 파는 건 봤어도 역내까지 들어와(어떻게 가판대를 들여왔을까?) 선로 옆에 가판대를 놓고 물건 파는 건 말이 안된다. 게다가 전등불도 켜져 있던 것 같던데(어디서 전기를 끌어온걸까?)…. 

 

 

  

 


◆보너스◆
<시월애> 홈페이지 디자이너 박미일 인터뷰

 

박미일 주요작품

영화 <개달리다> <하피> <시월애>
<드림엑스 icine 영화관>(http://www.dreamx.ne/),
<한솔 CS 사이버영화관>(http://www.csclub.com),
IMOK 인터넷영화관(http://www.icine.com/ok/index.html) 홈페이지 등

 

전지현의 테크노댄스에 빠져들 때처럼 순간, 호흡이 멎어지는 매력적인 사이트를 만났다. 그곳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 모니터를 어루만지게 한다. 내가 그곳에 이끌려간 것은 지루하게 오지 않는 환영의 애인을 포기하고 돌아서 본, 지하철 벽광고로부터였다. 그렇게 간절한 레드는 처음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www.siwolae.co.kr 라고 쳐 넣자, 전지현이 슬픈 사슴눈을 하고 8프레임의 속도로 울먹이고 있었다.

 

왜 울까? 나처럼 만나볼 수 없는 애인의 실루엣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던 건가? 되풀이해서 같은 화면을 계속 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8프레임의 속도로 슬픔을 발산하고 있었다. 더 이상 보기를 그만두려할 때, 작은 글씨가 보였고 거기엔 그녀의 사연을 대신해서 말해주려했던 한 디자이너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순간에 지나쳐버려 눈에 넣기 힘든, 암호 같은 숫자를 박아나 하마터면 그녀의 사연을 듣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Q. 시월애 홈페이지가 탄생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약간의 불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어요. 그리고 주연이 전지현이고 이정재라는 정보 정도가 제가 갖게 된 전부였죠. 여기서 얻은 일차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작업에 임했어요. 과정 중에 동영상 자료랑 포스터, 스틸 같은 거 보면서 전지현의 애절한 사랑 같은 걸 많이 연출하려고 노력했어요. 로맨스적인 여러 사이트를 많이 보면서도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죠. 메인샷 담는데만 꽤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빨간색 포스터가 맨 마지막에 나온 거였는데 제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의 느낌이랑 그 포스터랑은 느낌이 좀 달랐어요. 그래서 부딪혔죠. 전 솔직히 지금도 메인이 좀 맘에 안 들어요. 개인적으론 분위기를 좀 뽀사시하게 가려고 했었는데 메인에 빨간색이 딱 나오니까 왠지 언벨런스한 감이 들었죠. 이건 서브페이지가 먼저 들어간 단계에서 메인을 한 거였기 때문에 메인과 서브가 일치 안되는 상황이 연출된 거예요.

 

Q. <시월애> 홈페이지 제작에서 특히 신경 쓴 점
클릭하고 들어가면 단순히 화면이 바뀌기보다는 들어갔을 때 무엇인가 느낄 수 있는 작은 재미를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영화홈페이지는 텍스트가 많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않아, 이런 것을 탈피하고자 클릭했을 때 느껴지는 작은 재미를 부여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죠. <시월애>는 눈물 같은 애절한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많이 노력했습니다.

 

인터뷰/글 이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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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3.07.26 11:00

2000.1.26
브라이언드 팔머의 <두 얼굴의 젝크>를 보다.

이 영화는 어이없게도 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리지널인 131분 러닝타임 <Body Double(바디 더블)>과 한국서 <침실의 표적>으로 둔갑한 112분 버전 그리고 바로 이 90분 짜리 <두 얼굴의 젝크>가 그것이다. 이 나라에서 출시된 비디오의 대개는 잘려있다. 지금은 좀 덜한 편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의무적으로(?) 사지 절단된 채 나왔다. <Body Double(바디 더블)>도 예외는 아니어서 무려 41분이나 뭉텅 잘려나갔다.

그럼에도 <Body Double(바디 더블)>의 이본이 된 <두 얼굴의 젝크>에는 여전히 팔머의 남다른 솜씨가 남아있다. 히치콕 영화 패러디(또는 오마주) 솜씨가 이번에도 밉지 않게 보여진다. <이창>의 'Body Double(몸 대역)'을 자처한 또 다른 가짜 <두 얼굴의 젝크>는 시종일관 과도한 관음주의적 쾌락과 유쾌한 화술구사로 메이커와 작가라는 두 얼굴을 오고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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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2.10.18 00:43

 

2000.1.15
박종원 감독의 <송어>를 보다.

<송어>는 이기심과 탐욕으로 점철된 인간의 허위를 보여주는 영화다. 다섯 명이 기분전환으로 복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산골의 양어장에 머무르면서 현미경은 배율을 넓혀간다.

 

집 떠나면 오래지않아 집이 그리운 법이다. 송어와 같은 귀소본능이라 설명하지 않아도 익숙한 습관이 지배하는 그곳에 우리는 회귀하길 바란다. 다섯 인물도 마찬가지다. 외진곳에서의 하루가 지나자 이들은 권태를 느낀다. 제아무리 귀한 송어회라도 질린다. 차라리 라면이 더 좋다. 이 시점에서 이곳을 떠났으면 좋았을 것을 일은 꼬이고 권태의 누적은 균열을 가져온다. 남자들이 다방레지와 놀음을 하고있는 사이 그들의 처와 처제는 낯선 남자와 화간한다. 조금씩 금이가던 유리는 급기야 바닥에 떨어져 형체를 알 수 없게끔 될 위기에 처한다.

 

결국 인간의 바닥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살인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던 이들은 서로 적이 되며 속물근성을 보여준다. 총을 피해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우왕좌왕하는 꼴에선 불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들은 속내와 부정을 모두 들켜버렸지만 이곳을 떠나 도시로 진입하는 순간 암묵적인 화해를 할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하는 게 서로 편할테니까. 이것이 소시민의 삶이라고 <송어>는 말한다.  [★★★☆] 

*촬영장소 :  삼척시 노곡면 상마읍 옷바골
*수상내역 :  동경국제영화제(12회)-심사위원특별상, 백상예술대상(36회)-최우수연기상: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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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1.05.31 17:00

2000.11.29
지루하게 시간을 견딘 후 나다극장에서, 양덕창(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을 보다.

이 영화는 1994년 볕이 슬픈 봄, 내 나이 21에 강남의 한 시네마데끄에서 본 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6년 전, 그때 역시 마냥 외로움을 즐기고 살던 때 나는 4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에 청춘을 맡기고 있던 거다. 기억이라곤 불편한 의자와 TV모니터, 끊임없이 오는 잠, 그리고 엘비스의 노래와 고령가 소년 소녀의 낡은 색깔이 전부이다.

왜 보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제목에 끌려서 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병든 닭처럼 고개를 조아리면서 본 영화였지만 이 영화는 내 인생의 100편에 꼽혀있었다. 느낌의 문제였다.

오늘 다시 보기로 한 것은 졸음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부분을 메우기 위함이며 과연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을까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 역시 졸았다. 부분부분 새로운 장면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절로 감기는 눈은 어쩔 수가 없었다. 2시간 상영 뒤 중간 휴식을 끝내고 나머지 부분을 상영하려 했을 때 몇몇은 돌아가고 텅빈 자리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졸아가면서도 삐걱 의자소리를 내면서도 끝까지 고령가 소년 소녀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과연 기성 평론가들은 몇이나 보았을까? 하루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투자하며 수고를 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줄까? 내가 그 일을 해냈다고 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대만(영화)을 읽는 중요한 자료이다.

여전히 온전히는 이해할 순 없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나른함과 지루함, 그리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인내하면서까지 보는 이 미친 짓이 좋다. 아직까지도 내 귓가에는 리틀엘비스의 미성의 노래가, 소년이 소녀에게 저지른 마지막 행동의 슬픔이 망막에 기억되어 있다. 그 소년 지금은 희망을 보고 있을까?

여전히 나는 <고령가소년 살인사건>을 내 인생의 영화 100편의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리고 수년 후 다시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온다면 한 번 더 도전해 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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