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3.07.20 22:50

2002.11.24
어제 EBS에서 예약녹화해 둔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나비사냥>(La Chasse aux Papillons)을 보다.  

아, 이제는 할부로 비디오데크 한 대 살까보다. 지금 엄마 방에 있는 비디오비전은 구형이라 TV가 켜져 있으면 예약녹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비사냥>은 앞부분이 잘린 영화(아마도 엄마가 TV를 보다 잠드셨다가 뒤늦게 끄셨을 것)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나비사냥>은 집에 대한 애착과 가문의 몰락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탐욕의 인간들이 파리떼처럼 끓는다. 망자에 대한 애도도 없이 그들은 저들의 안녕을 위해 물건 하나라도 챙겨가려고 기웃거린다. 또 비아냥거리고 말다툼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 내 현실과도 같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에 성(저택)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는 장면이 특히 편치 않았다. 오래 소유했던 집의 주인이 바뀌어서도 그랬고, 단순하게는 새 주인이 일본인이어서 그랬다. 이런 잘 알려지지 않은 수작에도 일본인이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 부러웠던 게다. 

 

<나비사냥>의 백미는 정적인 화면이 보여주는 느린호흡 그리고 그 속의 인간 관찰이다. 비오는 날의 장례식 풍경과 늙은이들의 아름다움은 지극한 일상이면서도 특히 빼어나다. 한편 간혹 끼여드는 초현실주의적인 화면은 루이 부뉴엘의 <세브린느>처럼 몽환적이면서 현실에 파고드는 힘이 있다.  [★★★]       

 

※ 덧붙이기
부산국제영화제 못 갔다고 울지 말고 EBS 영화 먼저 열심히 챙겨봐야겠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해준다. 

 


제 작 : 프랑스 (1992년도 작품), 112분
감 독 :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Otar Iosseliani
주 연 : 나르다 블랑쉐 / 피에레트 퐁퐁 바이아슈 / 알렉상드르 체르카소프
수 상 : 파시네티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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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2.08.28 21:49

 

 

2002.2.18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을 보러 서울아트시네마에 가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를 보러 왔다. 웬 미소년이 앞에서 서성거리나 했는데 그가 바로 <피도 눈물도 없이> 개봉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류승완 감독이었던 것이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 낫고 스물 네댓 정도밖에는 안 돼 보였다.(류 감독은 전도연과 연배란다.)

 

박찬욱 감독이 권해서 왔다는데 스즈키 세이준의 작품은 류 감독이 지향하는 B급 정서에 부합하는 바 많을 것이니,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작품이 두 편 째 관람이 될 것이며, 남은 일정에도 또 온다했는데, 의미있는 신작 개봉을 앞두고 이런 자리에 있어도 되는 것인지 좀 의아스럽긴 했지만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내게도 스즈키 세이준은 이번이 첫 대면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상상하며 갔으나 그는 그완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는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의 동시상영을 위해 영화를 찍는 고용된 B급 감독이었단다. 그러나 그는 위로부터 주어진 대로 다작을 하지만 관객중심주의 영화를 만들었다. "각 영화에 이렇다할 주제의식은 없으며, 인간성이나 사회성을 추구하는 등의 대담무쌍한 행동도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재미를 느끼는 방법 또한 다를지 모릅니다만, 없는 지혜를 쥐어짜서 볼거리를 제공코자 노력해 왔습니다." 세이준이 회고전 즈음해 필름2.0에 보낸 편지의 일부다. 여기서 볼 수 있듯, 그는 한국의 남기남 감독처럼 영화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 없지만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리고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 처음 접한 그의 <문신일대>는 정말 엉터리 영화가 확실하다. 갑작스런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내러티브와 색채는 물론이고 모든 감정과 액션이 과잉되어 있다. 격투씬에서 동선은 노출되어 있고, 이 마저도 액션 리액션이 지나치게 모범적이다. 게다가 가시는 걸음걸음, 화투짱을 뿌리는 모습이 인상적인 엔딩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느닷없음은 고상함에 질린 관객을 흥분시키기에 딱이었다. 당시 그를 고용한 니카츠는 세이준에게 가장 따분한 대본만을 맡기곤 했다는데 세이준은 그만의 독특한 유희정신으로 관객에게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를 아직 잘 모르며, 작품을 더 보진 못했지만 스즈키 세이준은 분명 모든 지망생들의 귀감이자, 변혁을 꿈꾸는 감독들의 오야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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