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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깊은 슬픔'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곽지균 감독

by 22세기소녀 2010.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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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0
대중연예적 감성코드가 일치하는 불알 친구와 곽지균 감독의 <청춘> 시사회에 가다.

개봉 40여일이 지난 후, 그러니까 이미 극장간판이 거의 다 내려진 상황에서의 시사회라니, 그 저의를 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비디오쪽을 위한 마케팅이였으려나? 비디오업 관계자들을 위한 시사회는 있다고 들었지만 일반대중을 위한 철지난 시사회에 참석해 보기는 처음이다.) 아무튼 감사히 보았다.

오시이 마모루라는 이름이 걸린 <인랑> 시사회 제의도 고사하고 애써 본 <청춘>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차"였다. 그러니까 이를 별로 대체해보면 ★★★☆가 되겠다. 주위의 한결같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춘>이 분명 괜찮을 것 같은 예감이 일찍부터 들었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나는 곽지균 감독의 전작인 <젊은날의 초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꽃의 공중유영 아래 청춘의 고뇌를 아침안개처럼 담아냈던 그 영화를 나는 잊지 못한다.
 

2000년에 부활한 곽지균 감독의 <청춘> 또한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감성과 고뇌를 뿌려댔다해도 나는 여기서 아침안개를 보았다. 비록 주인공들이 테크노춤을 추지 않고, 인터넷에 몰입하지 않고 있다해도 곽 감독이 보여준 청춘의 고뇌 표현값은 그 어느 시대의 수작과도 다르지 않았다. 시간적 배경이 2000년이라 해서 최신가요가 등장해야하나? 아직도 어떤 젊은이의 이어폰에는 돈맥클린의 '빈센트'가 흘러나오는 횟수가 더 잦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어제 20대 초반 화상채팅방에 갔다가 시종 흐르는 '런던보이'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시대를 막론하고 당시 청춘이 느끼는 무게는 다 비슷하리라 본다.

<청춘>이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그렇지", "그랬었지"라고 혼잣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절실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 느꼈던 고민들이 프레임 군데군데 스며있다. 그리고 5명의 청춘에서도 '괜찮은' 고뇌와 몸짓(?)을 볼 수 있다. 배두나는 남들이 하는 말과는 달리 '괜히' 벗지는 않았다. 영화에 필요했고 노출이 따로 놀지 않았다. 단 대역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전도연과 이지현의 등가에서 한 계단 내려선다. 그리고 연기 변신을 기대했지만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엉뚱하고 귀여운 이미지에서 많이 달아나진 못했다. 반면 윤지혜는 <여고괴담>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김정현과 김래원은 훌륭하다. 김정현이야 이젠 영화에서 익으니까 다른 언급은 차후에 미루고 김래원은 연기는 덜 익었지만 캐스팅면에선 괜찮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외모면에선 흠잡을 데가 없어 여성관객들은 심장박동 소리를 감추느라 애좀 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늘 영화일기에서 하는 얘기지만 진희경의 배역소화력은 늘 맘에든다. 기면발작증으로 쓰러진 수인을 안아주고 걱정해주는 정혜는 얼마나 따뜻해 보이는가. 필름 속 그녀가 좋다.

지금도 <청춘>속의 주인공들처럼 누구는 사랑의 중독에 빠져있을 것이며, 누구는 서투른 섹스에 몰입하고 있을 것이며, 누구는 매화꽃 지듯이 생을 포기하는 청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청춘의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잘만 헤쳐나오면 그래도 삶은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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