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29
지루하게 시간을 견딘 후 나다극장에서, 양덕창(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을 보다.
이 영화는 1994년 볕이 슬픈 봄, 내 나이 21에 강남의 한 시네마데끄에서 본 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6년 전, 그때 역시 마냥 외로움을 즐기고 살던 때 나는 4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에 청춘을 맡기고 있던 거다. 기억이라곤 불편한 의자와 TV모니터, 끊임없이 오는 잠, 그리고 엘비스의 노래와 고령가 소년 소녀의 낡은 색깔이 전부이다.
왜 보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제목에 끌려서 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병든 닭처럼 고개를 조아리면서 본 영화였지만 이 영화는 내 인생의 100편에 꼽혀있었다. 느낌의 문제였다.
오늘 다시 보기로 한 것은 졸음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부분을 메우기 위함이며 과연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을까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 역시 졸았다. 부분부분 새로운 장면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절로 감기는 눈은 어쩔 수가 없었다. 2시간 상영 뒤 중간 휴식을 끝내고 나머지 부분을 상영하려 했을 때 몇몇은 돌아가고 텅빈 자리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졸아가면서도 삐걱 의자소리를 내면서도 끝까지 고령가 소년 소녀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과연 기성 평론가들은 몇이나 보았을까? 하루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투자하며 수고를 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줄까? 내가 그 일을 해냈다고 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대만(영화)을 읽는 중요한 자료이다.
여전히 나는 <고령가소년 살인사건>을 내 인생의 영화 100편의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리고 수년 후 다시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온다면 한 번 더 도전해 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