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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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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전주국제영화제 다녀오다

아오이 우유 My Night At Maud's 2011. 7. 31. 16:00

4.29
한희정, 가을방학, 2ne1 그리고 LG트윈스와 함께 한 전주행. 반갑다, 쓸쓸하다. 숙소를 구하러 가다가 백현진 공연에 붙들렸다. 씁쓸한 와인을 병째 마시며 즐기고픈 야외공연. 방송시간 기다렸던 김연아 세계선수권도 잊게 만들었다.

걸어도 걸어도 불켜진 여관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저 멀리 '평화여인숙'. 정선에서나 만나야 할 것 같은 여인숙이 특별한 하루를 보내게 만들어 주었다. "총각, 젊은 아가씨 안 필요해?"

4.30
1. 티켓을 끊으러 '납작한 슬리퍼' 카페로 갔다. <파수꾼>의 서준영이 납작한 슬리퍼를 신고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회오리바람>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음… 잘 생겼다. 다듬지 않은 수염이 제법 매력적. 그러나 여배우가 아니므로 사인이나 기념촬영은 패스. 그나저나 올해도 보고싶던 영화들은 대부분 매진이었다.

2. 첫 영화로 <단신남녀>를 보았다. 씨네21의 추천이 있었고 무려 두기봉 감독에 <호우시절>의 고원원이 출연했으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상당히 실망했다. 영화는 연애 감동 아이템을 뽑은 다음에 그것을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지겹도록 봐온 신데렐라 스토리를 영화제까지 와서 마주하고 있자니 고통스러웠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여자를 얻기 위해서는 차와 집 정도는 껌처럼 사고, 직접 설계한 고층빌딩에 프로포즈 할 줄 아는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영화. 내 취향이 아니다.  [★]

3. 매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작품들은 줄줄이 내야 땅볼 아웃. <길 위의 또 다른 여행자들>(Sad Vacation)은 라이 따이한 문제를 다룬 영화로 DIGIBETA 촬영의 취약을 상쇄할만한 이야기의 힘은 적었다. [★]  

<여정 (Paths)>(1977)은 포르투갈 영화 특별전을 통해 처음 경험하는 포르투칼 영화. 첫경험으로 대단한(?) 영화를 만났다. 포르투칼의 시적, 신화적, 회화적 여정을 함께 떠나다보니 신기하기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들은 눈만 뜨고 있는 관람상태로 만들었다. 몇몇 단서로 관람을 이어가는 노정은 꽤나 힘들었다.  [★★]  

4. 사서 고생하고 싶어 '평화 여인숙'에서 일박을 더했다. 만원이라는 숙박비도 유혹했지만 지낼만했기에 짐을 풀었다. 새로 바꿔준 이불도, 챙겨주시는 주인 아주머니(엄마인 할머니와 주, 야간 교대하는 듯)의 마음도 나를 붙들었고.

5.1
1. 모기랑 싸우다가 겨우 잠들었다 했는데 아침부터 남자 목소리. 옆방 김양과 건조한 섹스를 하고 그는 사라졌다.  

2. 영화제 셋째 날의 첫 영화 <우린 우리다>. 멕시코 공포영화로 카니발리즘을 다뤘다. 자기들끼리만 심각한 영화로 나를 방관자로 내버려두었다. 식인의 맛(?)도 없었다.  [★]   

3. 지금까지 4타수 무안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술이 깨면 집에 가자>를 만났다. 아사노 타다노부를 믿어 은근 안타를 기대한 영화였는데 펜스를 맞히는 2루타였다. 영화를 보며 술로 인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도 저런 심정이었을까, 하며 그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술이 깨면, 집에 가자"고 무수하게도 결심했을 것이다.  [★★★]

4. 예정한 날의 마지막 영화 <실비아의 도시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영화는 내가 전주에서 이제까지 만나 보석처럼 간직하는 <나는 스무살> <포토시, 여행의 시간> <실록연합적군>과 같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어떤 영화가 기억에 남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네 영화를 꺼내 자랑할 것이다.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실험적이며, 그 실험이 실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철학을 경유한다. 서둘러 비유하자면 <비포 선 셋>의 실험영화 버전이라고나 할까. 한 남성이 매력적인 여성을 따라가며 프랑스의 한 소도시(스트라스부르)를 구석구석 핸드헬드로 여행하는 이 유려한 영상은 시적인 감흥을 준다. 도시와 골목길, 여성과 미행 그리고 즉흥과 우연의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완벽한 이상형을 만난 것과 같은 감흥을 주었다.  [★★★★★]

5.4-5.5
전주영화제는 처음이라는 그녀와 함께 영화제 폐막 즈음, 전주를 다시 한 번 찾았다. 그녀와 탐험하듯 전주를 재발견하고 좋은 영화를 만나고 싶었으나, 주어진 일정이 짧았고 여전히 티켓이 없어 특별한 추억을 남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와 포르투칼이라는 영화적으로 낯선 두 나라에서 온 <재회>와 <포르투갈식 이별>은 축축하거나 말랑말랑한 데이트 무비가 아닌 다소 무겁고 심각한 영화였다. 이중 <재회>(Die Vaterlosen The Fatherless)는 대안가족을 다룬 영화로 <다섯은 너무 많아> <가족의 탄생> 등 유사 소재의 한국영화에 비해 스토리와 표현 방식 모두에서 심심했다. 촬영에 관심 많은 내게 종종 매혹적인 장면을 선사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재회는 원치 않는다. <포르투칼식 이별>은 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다룬 영화로, 전쟁에서 희생당한 개인에게 묵념하고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의 현재를 위로한다. 이 영화에도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싶다.  [재회: ★★ / 포르투칼…: ★☆]

그녀와의 첫 전주영화제는 영화가 아닌 열무국수, 메밀소바, 바나나생과일주스 그리고 열정의 허클베리핀 공연과 꽃문양 벽지가 아름다운 전주관광호텔 객실에서의 필름사진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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