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7.1∼
제12회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집에서 보다.
티켓 구하기도 힘들고…, 사실 예매하고 직접 극장을 찾는 일이 귀찮아져 지난해부터 올레KT 서비스를 택하고 있다. 큰 스크린으로 본다면 물론 좋겠지만 소박한 단편영화를 반드시 극장에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같은 영화를 한 공간에서 함께 보며 공감하는 일이라든가 관객과의 대화를 보너스로 챙길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우선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을 전부 보았다. 일괄구매 4천원 중 2천원은 포인트로 결제했다. 좋은 세상.
개인적으로 <9월이 지나면(When September Ends)>(고형동|2013|HD|23min 26sec)이 가장 좋았다. 아마추어와 날 것의 느낌이 나지만 그것을 매력으로 살린 내공이 상당한 영화다. 영화는 사랑이 어떻게 오고 스며들어 시작되는 지를 시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남자선배가 기타를 치며 여자후배에게 들려주는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의 분위기(마치 <비포 선 라이즈>의 엘리베이터 장면을 연상시킨다)와 사연이 여자가 보는 영화 <러브레터>로 스며들고(남자가 사랑했던 사람은 9월에 떠났을까?) 이를 통해 관심에 불과했던 사랑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처럼 전반에 걸쳐 스며듦의 과정을 배치해 두고 관객으로 하여금 알아채고 느끼게 만든다. 영화는 남녀 배우의 매력도 큰 몫을 하는데 남자(조현철)는 외모 대신 매력을 입혀서 좋고 여자(임지연)는 식물 같은 외모에 약간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엉뚱한 성격을 주어 좋다.(신세경 닮았다.) 여자는 자신의 설계 의지처럼 아마도 사랑에 관해선 신중하고 오랜 가치를 아는 사람 같다. 남자도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진 여자를 다시 봤고 뭔가 많이 알려주면서 같이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영화는 또 안도 다다오를 존경하는 건축학도 다운 집을 주인공의 정신과 일치시킨다. 고형동은 장편 데뷔작으로 연애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 [★★★★]
<강철유리(The White noise>(김태영|2013|HD|15min 49sec)의 마지막 장면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 소개를 보니 아이를 버리는 것에 성공한 것이라는데 어떻게 아이를 버렸다는 거지? 무언가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여주인공의 연기는 좋았다. [★★☆]
<월동준비(Jane, we know)>(이윤형|2013|HD|23min 53sec)은 난개발로 사라질 동네를 기록한 정도의 성취만 있다. [★★]
<난 널 알아(I know you)>(조해동|2013|HD|35min 58sec) 십대의 동성애적 코드가 흥미롭게 읽혔다. [★★☆]
<시바타와 나가오(Shibata & Nagao)>(양익준|2012|HD|19min 18sec)는 양익준이라는 이름을 앞에 두고 봤을 때 실망스러웠다. 영화가 드러내고자 한 미묘함이 잡히지 않았다. 누군가는 느꼈을 지도. [★]
<백 번째 오디션(100th Audition)>(김유신|2013|HD|22min 7sec) 남주인공과 그의 형으로 나온 김영민이 서로 닮아 실제 형제인 줄 알았다. 내용보다는 촬영이나 연출 면에서 관심이 더 갔던 작품. [★★☆]
<동거(Housemate)>(왕혜령|2012|HD|36min 18sec)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중 좋았던 두 편 중 하나. 소재를 취하고 이야기하는 능력이 남달랐고 메시지 전달도 좋았다. 또 가족의 초상과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패밀리의 연기도 대단했다. [★★★★]
<사랑의 묘약(Love Potion)>(김현규|2012|HD|8min 59sec)는 짧은 시간 안에 공포와 유머,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편영화만의 재미가 있다. 염정아와 배성우의 연기가 압권. [★★★]
<남자들(Men)>(남궁선|2013|HD|30min)은 전반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여주지만 아쉬움이 있다. 메텔과 철이, 포르노 이야기를 심은 초반부는 본 얘기를 위해 만든 설정 같은데 그 자체로는 괜찮지만 뒤와 잘 붙지 않는다. 그냥 거두절미하고 에피소드부터 시작해도 좋았을 것 같다. 또 배우들이 연기를 곧잘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하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건 연출의 문제인 듯. 그리고 섹스 동영상 유출은 심각한 문제인데 뭔가 소재로써만 쓴 느낌이다. 또 하나. 영화 설명에는 서른 살의 얘기로 나오는데 누가 봐도 20대 초반 여자 얘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
<소년과 양(Two Boys and a Sheep)>(이형석|2013|35mm|18min)은 본 섹션 작품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보게 됐다. 조성희의 <짐승의 끝>처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묘한 기류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1차적인 소감을 정리한 글. 계속해서 보완하고 다듬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