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2.17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를 maupu, 그리고 문라이트님과 함께 보다.
영화의 모양새는 점점 다양해진다. 국가 간의 합작형태 영화가 느는 가운데, 이번 <순애보>가 보여준 한일 양국 간의 정서와 시스템의 결합은 영화보기의 새로움을 준다. 일본말을 듣고 두 국가 간의 배우가 만나는 걸 본다. 일전에도 합작은 있었지만 정상의 배우가 출연한 본격적 메이저 영화는 없어, <순애보>엔 더욱 신선감이 있다.
<순애보>는 나른한 일상에서의 작은 욕망을 말한다. 우인(이정재)은 제빵보조강사 미아(김민희)와 인터넷에서 발견한 아사코에 대한 짝사랑을 품고, 아야는 인상적인 죽음을 갈망한다. 이것은 이들의 유일한 현재적 삶의 의미가 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무기력이다. 기댈 것 없음과 처한 현실의 정체, 그래서 별로 욕심없음이 뒤섞여 영화는 한없이 나른하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에서 아주 매력적인 영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상업성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대신 지나치게 관객과 숨바꼭질하기를 원한다. 내가 이거 이거 이거를 숨겨놓았으니까 찾아봐라 하는 식으로. 수많은 장치와 코드가 소풍에서 많이 해본 보물찾기의 종이처럼 숨어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네마자데, <택시드라이버>의 트레비스와 파생되는 호모비디오쿠스, 촬영감독인 홍경표 카메오의 단순코드들을 즐기다, '동사무소 직원=나른함, 알래스카=신비
의 공간' 같은 이젠 더 이상 신선함을 바랄 바 없는 컨벤션이 되버린 장치를 읽어냈을 때쯤, 감독의 그 속내가 뻔히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 좀 질리는 맛이 있다.
쿨하진 않지만 다치바나 미사토의 풋풋한 신선함, 이정재의 물 흐르는 듯한 연기에서의 나른함, 권태감은 제법 잉크가 다 마른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상업적 부담을 벗어난 의식적인 화법은 좋았지만 그것이 너무 읽혀지기를 바랐다는 점에서 <순애보>는 개인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작품이다. [★★★]
※덧붙이기
아야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오스기 렌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충실하고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