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31-2011.1.1
2010년은 생에 가장 고통스런 한해였다. 그 끝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종로를 걸었다. 피맛골 생선구이 골목이 없어졌다. 오세훈은 중년과 가장들이 회포를 푸는 아름다운 아지트를 포크레인으로 묻어버렸다. 단 한 사람의 주관으로 서울이 이렇게 흉물스럽게 바뀌어가도 된단 말인가!
광화문 스폰지하우스 앞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소개팅이 깨진 현승이가 합류했다. <카페 느와르>가 시작되었다. 야윈 한 소녀(정인선)가 카메라를 응시한 채 커다란 햄버거를 끝내 다 먹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토가 나올 지경인데 카메라는 3분 여의 롱테이크로 집요하게 그 모습을 다 보여준다. 도대체 왜?
나는 사실 <카페 느와르> 같은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척'하는 것 같은 온갖 실험들과 낯설게 하기. 이미 고다르를 통해 신기해했던, 유행이 지난 것들. 감독의 취향일 수 있지만 난 정성일이 그에 대한 편견을 깨는 가벼운(?) 영화를 만들어 주길 바랐다.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일 거라 생각했는가. <카페 느와르>에 감독은 다 쏟아 부었고, 한없이 무겁다. 역시로 남은 '정성일' 평론가의 데뷔작!
오마주와 개인의 아카이브로 꽉 찬 1부보다는 2부가 좋았다. 지아장커식으로 담은 곧 사라질 공간(청계천)의 슬픈 아름다움. 정유미가 있는 흑백의 기이한 여행. 무엇보다 영화 같아서 좋았다. 특히, 정유미의 12분 짜리 연극적 대사가 담긴 장면은 아름답고 놀라웠다.(감독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을 것을 주문했고 정유미는 9개월 간 이 대사를 입에 달고 다녔다 한다) 정유미와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빨려 들어가 내가 영화가 되었다. 정유미가 아니라면 아우라가 생기지 않을 장면. 그리고 나를 또 깜짝 놀라게 한 장면. 정유미가 춤추는 장면. 저 사람이 저럴 사람이 아닌데 정성일은 정유미를 춤추게 했다. 역시 롱테이크로,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허우 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를 보는 듯 취했다. 정유미가 싸이더스에서 나와서 이런 영화에 출연하고 놀고 있는 게 좋다. 올해의 정유미 베스트씬 중 하나. 한편, 요조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긍정의 기운들이 있어 좋았다. 숨막히고 우울의 연속에서 요조는 숨쉴 수 있게 한다.
<카페 느와르>는 신념과 주견이 있는 영화다. 감독의 설명을 통해 이해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진심을 알게되어 다행이다. 다시 보게 된다면 더 좋고 더 아플 것 같다. 한 번 읽은 적 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백야>를 주문했다.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쓰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듣는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잠시 생각한다. [★★★]
카페느와르 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