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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만들어준 영화 같은 배창호 감독의 <여행>

by 22세기소녀 201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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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가 행복하다. <계몽영화>에 이어 배창호 감독의 <여행>을 연이어 보았다. 역시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0년 한국영화 11편 중 하나.

영화 시작 전, 우유라도 사먹을까 하고 나서려는데 김태용 감독이 들어서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나를 위해 문을 잡아두었다. 그의 머리와 외투의 어깨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눈을 털고 들어섰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에겐 그가 현빈 같았다. 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을 맞으며 편의점에 가 우유와 사인 받을 펜을 샀다.
커피를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객석에 앉는 감독님에게 사인을 받았다. 뒤이은 여러 사람들의 사인 요청. <만추> 개봉일을 알면서도 물었는데, 친절히 알려주신다. 2월 17일이라고. <시크릿 가든>의 현빈 덕에 개봉일이 빨리 잡힐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이미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맨 앞자리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영화였다.  
김태용 감독의 옆옆옆옆옆 자리에서 <여행>을 보았다. 제주도여행이 하고싶어졌다. 이성, 민박, 자전거,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함께 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도 좋고, 솔로, 호텔, 자가용, 커피가 있는 세 번째 에피소드도 좋다. 중요한 건, 긴 여행을 하고 싶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영화라 배창호 감독 특유의 마음을 흔드는 영상 매혹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소소한 질감은 여전히 나를 위해 만들어준 영화 같다.
세 편으로 이루어진 에피소드 중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첫 번째 '여행'이다. 아직 상대의 마음을 확실히 모른 채 함께 여행을 떠나봤던 자로서, 영화 속 커플들의 풋풋한 전류는 보는 내내 미소짓게 만들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참말로 좋겠다. 그녀, 지금쯤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  
두 번째 에피소드 '방학'에서는 울음을 꾹 참느라고 힘들었다. 누이의 아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 사이 어색한 부분도 많았지만 제주도 현지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는 소녀의 연기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제발, 이 세상의 부모들이 아이를 두고 이혼하는 일이 없기를.
세 번째 '외출'은 <러브스토리>(1996) <정>(1999) 이후 근 10년 만에 외출하신 배 감독의 아내 김유미가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게 했다. 디테일이 상당하다고 느꼈는데 내 옆의 중년 여성 관객은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세상의 아줌마들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기를.    
영화가 끝난 후, 배창호 감독을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로또라도 당첨돼서 여윳돈이 생긴다면 평생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기와 같은 영화가 점점 사라져 가는 세상, 배창호 감독님이 계속 해 주셔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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