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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잘 못살고 있는 90년대 학번에 대한 위로

by 22세기소녀 201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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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23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건축학개론>을 보다. 9시, 10시 두 차례 조조상영이 있었지만 좀 더 큰 상영관에서 보기 위해 9시 조조를 택했다. 빗속을 뚫고 상영 2분 전 도착한 극장에서는 수지가 멤버로 있는 미쓰에이의 'Touch'가 흐르고 있었다.

이용주 감독의 데뷔작 <불신지옥>은 당시 '수상한 가옥구조'라는 詩를 쓰려던 나의 뇌와 심장에 두 개의 총알을 박았다. 감독은 무엇보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4년 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였다. 감독의 차기작이 건축을 소재로 한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기대했다.

완성된 <건축학개론>은 기대했던 건축 미스터리가 아니었지만 한국 멜로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이 과정도 없이 뚝딱 지은, 그림 같은 집의 한계를 벗어나, 살고 싶은 집의 과정을 그려냈다는 데에서 감흥이 있었다. 나도 인생 말년은 제주에 집 짓고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긴 하지만 10∼20대를 울리지는 못할 것 같다. 영화는 잘 못살고 있는 90년대 학번을 잠시나마 위로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추억을 에피소드화해 나열하기 보다 습작에 그쳤을 서툰 첫사랑의 감정들을 한 장 한 장 벽돌 쌓아 집 짓듯 축조해나간다. 

돌이켜보면 대학시절, 승민(이제훈) 또는 나 같은 소극적 풋남들은 짝사랑했던 대상을 선배들에게 열심히도 빼앗겼던 것 같다. 수많은 밤과 낮들, 먹먹하고 아리게 했던 대학시절의 그녀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이 영화를 보며 혹시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났을까? 아마도 승민처럼 한결같지는 않았기에(하하) 그녀는 다른 사람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삶에 치여 <건축학개론> 따위, 개봉한 줄도 모르겠지.  [★★★★] 

※덧붙이기
1. '기억의 습작'은 노래는 명곡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무리가 있는 제목인 듯. 

2. 영화 몸살로 인해, 거금 1400원 들여 대학교 '성적증명서'를 발급 받아 보았다. 여러 개론 수업을 수강했던 걸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음악교육과 '국악개론' 수업 기억이 <건축학개론>처럼 훈풍과 함께 되살아났다. 당시 친구와 타과 수업을 자유선택 방식으로 수강했는데 담당 교수 왈, 타과생이 수강한 것은 학과 설치 이후 처음이라며 환대해 주셨다. 음교과 여학생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행히 배수지 같은 첫사랑의 원형 같은 여성이 없어 열심히 수업을 들은 결과 A학점을 받고 종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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