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아오이 유우 멀더군 2013.05.01 11:26

2013.4.27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올해는 혼자였다. 영화만 보다 올 것이 뻔했기에 가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나만의 걸작 발견에 대한 욕심이 전주행 새벽버스에 오르게 했다. 설렜던 건지 밤늦게 커피를 마셔서인지 한 숨도 자지 못한 상태로 첫 영화 <어머니들>(MOTHERS, 쉬 후이 징, 2013)과 만났다.   

중국은 '세상에 이런 일이' 소재가 넘치는 참으로 흥미로운 나라다. 워낙 인구가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중국 정부의 미성숙한 정책도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어머니들>은 산아제한 정책의 아이러니를 좇는 다큐멘터리로 아이를 몰래 키워야 하는 웃기고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의 아쉬운 점은 있는 사실만 기록한 정도라는 것이다. 보도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지만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자행되는 나라이다 보니 사실의 전달만으로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내가 중국에서 아무 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저 정도의 다큐멘터리는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성취가 모자란 작품인 것은 맞는 것 같다.  [★★★]

 

내가 좋게 본 중국의 다큐멘터리라면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세자매>(왕빙)이다. 산골 마을, 특별할 것 없는 세 자매의 일상을 집요하게 보여주는 작품인데 그로 인해 오히려 중국의 이면과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이어 같은 메가박스에서 <해리, 결혼하다>(WHEN HARI GOT MARRIED, 리투 사린, 텐징 소남, 2012)를 보았다. 이 영화는 사실 영화 제목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내 지인에 대한 자동 연상으로, 호기심으로 선택했다. 

 

<해리, 결혼하다> 또한 다큐멘터리였다. 등장인물들이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만 아니라면 일반 극영화 같을 정도로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에서 극적 재미를 취하고 있다.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의 한 쌍이 결혼풍습으로 인해 얼굴 한 번 본적 없이 결혼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가 바라보는 것은 정체와 변화가 함께 있는 현재의 인도이다.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정혼은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의 얘기일 것 같지만 인도의 일부 마을에서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이다. 영화는 결혼식 과정을 담으며 돈 없이 살 수 없는 변화하는 현재의 인도 또한 열심히 좇고 있다.

 

안 좋은 풍습은 빨리 없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그리고 결혼을 사고 파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부모간의 정혼도 큰 문제이고 결혼식에 드는 돈도 쓸 데 없는 것이 많아 보였다. 하객 몇을 제외하고는 전통이고 뭐고 다 돈 벌자고 하는 짓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결혼 당사자들이 피곤해 보였다. 신부는 무슨 죄로 거의 1박 2일에 이르는 결혼식에서 찬밥 신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 앞으로 인도도 많은 변화가 있겠지.

 

해리는 생각이 깨어있는 인물이니 그만 잘하면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기에 해리 신부에 대한 걱정과 눈물일랑은 거뒀다. "해리, 아내한테 잘 해주세요. 그리고 결혼했다고 대충하고 다니지 말고 자세랑 외모도 좀 신경쓰시고요."  [★★★]

이어 전주시네마타운에서 <파괴된 낙원>(LOST PARADISE, 이브 드부아즈, 2012)을 보았다. 앞서 본 두 편의 영화가 HD 디지털로 촬영된 데 반해 이 영화는 필름으로 촬영했다. 난 필름영화가 좋다. 필름은 심도가 깊어 무엇보다 감정을 드러내는 데 탁월하다. 그리고 정성 들여 찍은 느낌이 든다. 

 

<파괴된 낙원>도 별 이야기가 없지만 필름 특유의 질감으로 인해 인물 외의 프레임에서도 꽉 차 있었다.(저해상 디지털의 경우 버려지는 장면들이 많다.) 미묘한 성적 긴장감이 기억에 남는 영화.  [★★★]

듀나가 얘기했던가. 여성영화제 같은 전주영화제라고. 맞는 말인 듯하다. 이제까지 본 3편의 영화가 전부 여성이 중심에 있다.

영화관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비도 차고, 다음 상영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숙소를 얼른 잡고 쉬다가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속이 있어 보였던 N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내려온 N의 동생은 약속이 있어 먼저 가고 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N이 정말 오랜만에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그래서 네 번째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는 보지 않았다. 좋게 상담을 해주고 나는 다시 숙소 잡으러, 그녀는 택시를 잡아 타고 애인을 만나러 막걸리촌으로 갔다. 오늘밤은 '가맥'에서 건전한(?) 홍상수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찾은 숙소는 지난해에도 2박 했던 하루 숙박비 1만원의 평화여인숙. 잠시 자리를 비웠다 온 주인아주머니는 TV 없는 방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하자, TV없이 어떻게 자느냐 했다. 내게 이곳은 여전히 소설적이다.

2013.4.28
11시 첫 영화를 보기 전 아침으로 '길거리야' 음식을 먹기 위해 한옥마을인 교동으로 향했다. 10시에 오픈한다기에 주변을 산책했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소박하게 예쁜 동네다. 점점 상업적 상점들이 생기면서 인공적인 멋을 내고는 있지만 그래도 높아야 2층 건물에 한옥의 자태를 보존한 동네라 정감이 있다.

<화이트 발렌타인>에서 전지현의 집으로 나왔던 2층 한옥은 새단장 중이었다. 여기엔 또 뭐가 들어설까? 여고 앞이니까, 팥빙수가게는 어떨까? 아니다. <1박 2일> 방영 후 재료와 솜씨가 변했다는 '외할머니 솜씨'처럼 유명세 후 초라해지는 것보다 그냥 소녀 전지현이 창을 내다볼 것 같은 일반 가정집이 낫겠다. 돌아다니며 지붕 위 아침 고양이도 만나고 사람 발길 뜸했을 골목도 다녀보고 즐거웠다.

길거리야는 10시 오픈이라더니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린다. 나를 포함 다른 여자 손님들이 항의하자 자기네는 항상 11시 30분에 연다며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빵만 어쩔 수 없이 판매하고는 다시 문을 잠갔다. 밖에 개·폐점 시간을 붙여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건의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불친절로 유명한 가게인데 그것도 하나의 상술인가? 작은 배려와 친절만 더해진다면 정말 타지인들이 좋은 추억으로 다녀갈 곳일텐데 아쉽다. 암튼 멕시칸 타코처럼 복합재료를 넣은 길거리야 바게트빵은 정말 맛있다.        


든든한 속으로 전주시네마타운 1관에서 전주에서의 둘째 날 첫 영화로 <물새들>(WATERBIRDS, 시누 라마사미, 2012)을 보았다. <물새들>은 내가 바랐던 인도영화에 가까웠다. 가난한 사랑이야기. 비록 뮤지컬적인 요소가 없어 흥겹진 않았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예쁜 여주인공으로 인해 영화 보는 내내 사랑에 빠진 총각이 되어 있었다.  [★★★]    


이어 CGV 전주 3관에서 <F5>(알렉산더 코릿츠, 2012)를 보았다. 영화는 총 8개 밴드의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8개의 뮤지컬로 구성되어 있는데 흑백의 매력이 살아있는 단 한 편만이 나의 마음을 끌었을 뿐, 형식 내용 면에서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밴드라면 또 모를까 자꾸 'F5(새로고침)'을 해대는데, 피곤했다.  [★★]

세 번째 영화는 <내 심장이 멈추기 전에>(BEFORE MY HEART FALLS, 세바스티앙 호세, 2012). 히치하이커를 가장해 운전자의 지갑을 터는 생계형 범죄소녀 이야기를 다뤘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며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잔혹이야기>에 반했던 내게 <내 심장이 멈추기 전에>는 평범했다. 이 영화 또한 여성영화제스럽다.  [★★★]


피곤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다. 내일 출근도 있고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보고싶었던 작품 <폭스파이어>를 두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개막작이기도 한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파이어>(FOXFIRE, 2012)와 만났다. 영화는 짧게 말해 '낭만보다는 시대의 무거운 공기를 호흡케 하는 19금 <써니>'다.  [★★★★]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감독과 함께 여주인공 케이티 코시니가 게스트로 깜짝 참여했다. 영화에선 작고 마냥 귀여워 보였는데 블랙드레스로 고전적인 여성미를 자아냈다. 혹시 몰라 캠코더를 가지고 내려온 영화제였는데 마지막날 나만의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어 기뻤다.

집에는 운 좋게 도착했다. 서울발 심야우등버스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 회차 매진이었다. 모텔을 잡아야하나 호객행위 하는 합승택시를 타야하나 생각이 복잡해지려는 찰나 운 좋게도 티켓을 취소하러 온 사람이 있었고 혹시 몰라서 대기줄로 가봤다가 바로 떠나는 버스를 타고 발권 받은 버스보다 30분 일찍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

이번 영화제는 보통의 영화제 였다.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고 맛집도 별로 가보지 못했다. 영화제 프로그램도 범작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도 내가 만났던 프로그램은 크게 좋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의 영화들이 한 편씩은 있었다. 올해는 그저 운이 나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경쟁부문 심사위원 김영하 작가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영화를 참 좋아했던 태현씨가 잊지 않고 영화제를 찾아왔다.

 

로랑캉테 감독과 여주인공 케이티코시니 관객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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