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6
크리스마스 다음 날 <안티크라이스트>를 보다.
라스폰트리에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기란 참 고통스럽다. 그의 전작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 등은 작품 자체로는 대단했지만 관객의 고통을 즐기는 트리에 감독이 상상돼 짜증났었다.
오늘에야 다 본 <안티크라이스트>(고백컨데 두 달 여에 걸쳐 봤다. 집에서의 관람 특성상 집중할 수 없었다. 쉬운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번 플레이 할 때마다 어디까지 봤는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장면은 봤던 건데 어떤 장면은 또 새로웠다. 아마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본대도 새로운 관람이 될 것 같다.) 또한 이해불가 내용으로 괴로웠고 특정장면 때문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도대체 이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건지.
깐느 영화제 상영 당시 꽤나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안티크라이스트>에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다. 헤어 누드와 동물의 잔혹 장면은 예삿일. 공구로 정강이를 뚫고 역기 같은 걸 박는 행위, 실제 성교를 하는 클로즈업 장면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여성의 성기를 가위로 자르거나 돌로 내려쳐진 남성 성기를 손으로 사정시키는 장면에 가서는 혼절할만하다.
다행히 이러한 장면들이 (이해가 쉽진 않지만 어쨌든)영화의 주제와 맞물려 돌아간다. 그리고 마치 CF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안심시킨다. 몇몇 영상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나 볼법한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고(영화의 끝에 아니나다를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헌정'이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허허, 그러지 말지), 또 럭셔리 여성지에서나 볼법한 고급스럽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 장면들을 캡쳐해 전시한다면 위대한 사진이 될 것도 같다. 이 때문에 극장에서 필름으로 재관람하고픈데 정식 개봉은 요원한 일이니 영화제에서라도 틀어준다면 꼭 다시 보겠다.
<안티크라이스트>에서 또 하나의 충격은 윌리엄 데포와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연기다. 나이 먹을수록 연기가 날로 깊어지는 둘은 100여분에 달하는 시간의 빈틈을 만들지 않는다. 특히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모든 혼을 쏟는 굉장한 연기는 타임캡슐에 담을만하다. 만일 <밀양>과 <안티크라이스트>가 같은 해 출품됐다면 전도연은 깐느에서 웃는 일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이해불가,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안티크라이스트>는 창작의 고통을 열망하고 평범한 영화에 관람시간을 내주고 싶지 않은 나에게 자극이 되고 고마운 작품이었다. 아마도 라스 폰 트리에라는 악마에 빠져들게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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