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
시네마테크 KOFA에서 <회오리바람>(Eighteen)을 보다. 올해 KOFA 방문 중 가장 관객이 많았다. 감독도 깜짝 놀랐으리라. 올 2월 말 개봉 땐 외면당했다던데,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메모하는 학생도 보이고 20대 초반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수업과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 모두 한 번쯤 심장이 타 들어가는 첫사랑을 했었고 부모가 연애를 무조건 반대한 적 있었으며 헤어지자는 말에 곧 죽을 것처럼 괴로운 적 있었다. <회오리바람>은 누구나 경험했음직한 십대 시절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 절절하게 담아낸다.
영화의 힘은 디테일에 있다. 스토리가 대부분 감독의 자전적 경험의 반영이라던데 그래서인지 매우 자연스럽고, 소소한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감독 나이가 나와 비슷한데 그 이유 때문이었나?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감독은 문화학교서울에서 살다시피 했다는데 내게도 당시 문화학교서울은 유일의 소통 창구였기에 개인적으로도 반가웠다.
이러다 창녀가 되는 거라며 지나치게 간섭하며 연애를 뜯어말리는 서스펜스 장면을 보며 한국 부모의 자식사랑은 정신병적 수위란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들의 자위까지 대신 해주는 영화도 있으니, 분명 심각한 문제인 건 맞는 거 같다. 한국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란 정말 힘들다. 십대 때는 부모의 반대 때문에, 대학생이 되어서는 여자는 여전한 간섭, 남자는 군 징집 때문에, 결혼해서는 또 다시 부모들 간섭 때문에. 간섭받는 연애를 한 때문인지 한국 남자, 여자들 행복한 결혼생활을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혼을 많이 하는 것인가?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도 90분간 진행되고 분위기 좋았다. 나는 질문 대신 촬영만 열심히 했는데 200미리 렌즈 장착 카메라를 챙겨가 오랜만에 훈남훈녀 촬영의 즐거움을 맛봤다. 그런데 플래시 배터리 충천이 안 돼 있어 내장 플래시를 사용했는데 적목 현상이 나타나 흑백모드로 촬영했다. 다행히 괜찮은 결과물을 얻은 것 같다. [★★★☆]
1. 태훈 역의 서준영은 KBS2 <반올림3>에서 중국집 배달부 역할을 한 바 있다. 음식 랩 포장 디테일은 감독의 고등학교 경험이 반영된 것(감독 왈, 면허소지 고액 알바생였다고)으로 그 때문에 배우 서준영은 혹독한 포장 연습을 해야 했다고 한다. 잘 생긴 서준영은 영화 <파수꾼>이 개봉대기 중이며 7월 중 KBS2 드라마 <구미호의 복수>를 통해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세종대 무용과 출신인 이민지(미정 역)는 단편영화를 통해 계속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기도 좋고 외모도 있는데, 한국에 얼마나 잘난 여배우들이 많으면 이런 좋은 배우를 가만히 두는지. 독립영화계의 여신 양은용처럼 꾸준히 좋은 작품 만나다보면 꿈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2. <회오리바람>은 이창동 감독과 홍상수 감독이 각각 <초록물고기>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받은 상과 같은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을 수상하였다. 용호상은 패기 있는 연출을 한 신인 감독들에게 시상하는 상이다.
3. 영화의 제목 <회오리바람>은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 앤 짐>에서 잔느 모로가 불렀던 '인생의 소용돌이(Le tourbillon de la vie)'에서 가져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