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5.4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드디어 <은교>를 만났다. 『로리타』를 좋아하니 『은교』가 출간되자마자 구입했다. 그러나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 잊혀져 가던 박범신의 소설을 충무로에서 관심 가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물론 그의 작품이 영화나 TV로 만들어진 적은 있지만, 오래 전 일이다. 어찌됐든 『은교』를 스크린에서도 만나니 반가웠다.
무릇 예술이란 말이 안될 것 같은 것을 설득하는 데에서 위대함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노인의 17세 여고생에 대한 욕망을 다룬 <은교>는 사회 통념 금기의 소재를 예술의 힘으로 설득시킨다.
<은교>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형도의 시 '빈집'과 '노인들'이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집」). "…부러지지 않고 죽어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노인들」)
남자는 늙을수록 추해진다. 육신은 물론이거니와 정자가 한 마리라도 살아있는 한 아무리 늙었더라도 어린 여자를 욕망 할 수 있기에 추해진다. 슬픈 짐승이 되는 것이다.
<은교>의 이적요 또한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고 시험에도 출제되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그 또한 늙어 슬픈 수컷일 뿐이다. 주책스럽게도 그는 더 이상 그의 것이 될 수 없는 한 소녀를 열망했다가 가엾은 사랑 안고 빈집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영화 <은교>는 동명 원작소설을 뛰어나게 각색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크고 작게 바꾸었지만 원작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물론 가지치기가 많이 되고, 표현이 충분치 못한 장면도 있어 해석의 여지가 좁아진 것은 아쉽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훌륭하다.
대부분 좋게 보였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필름으로 찍히지 않았다는 것. 제작비 문제로 디지털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만약 필름 또는 그러한 깊이를 내는 디지털로 찍었다면 심도 깊고 아름다운 영상의 힘으로 은교와 이적요의 관계를 보다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은교와 시인 이적요가 만나는 첫 장면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내심 에드리안 라인의 <로리타>처럼 연출되기를 바랐으나 기대보다 덜 예쁘게 찍혔다. 물론 디지털로 찍었기 때문에 영화적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 효과도 적지 않았다.
또 하나의 아쉬움. 박해일은 더 많은 관객과의 만남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초반 연기는 상당히 불편했다.(연필 어쩌구 저쩌구는 지금 생각해도 오글거린다) 심하게 말해 박해일의 노 시인 코스프레 수준밖에 안됐다. 그런 데에 신경을 쓰다보니 집중과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역시 박해일이다. 감독이 왜 그를 택했는가가 후반부로 갈수록 선명해지고 급기야 박해일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놀라운 박해일!(그래도 노인 역은 설득력을 갖춘 늙은 배우가 맡았으면 어땠을까?)
<은교>의 최대 수확은 아무래도 김고은이다. 캐스팅은 소설 속 상상했던 그대로여서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다만, 좀 더 예쁘게 찍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사랑니>의 정유미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