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9
아내는 피맛골로 친구 생일 모임에 가고 나는 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영화를 봤다. <용서는 없다>와 <페어러브>중 내가 혼자 볼 영화로 아내는 <페어러브>를 골라줬다.
아내와 나는 7살 차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신혼 초 아내와 참 많이도 다퉜다. 아내가 많이도 울었다. 난 나름 잘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내는 나에게 불만이 많은 듯 보였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단 사과부터 해서 위기를 모면했던 순간들.
그림을 배우겠다, 학교를 가겠다,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방법을 찾아주거나 응원은커녕 돈 생각부터 했다. 현실적인 얘기들만 했고 어른처럼 굴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 괴로웠다. 나 좋아하는 영화를 못 보게 하는 것 같아 답답했고 누군갈 챙겨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랬었다.
<페어러브>를 보면서 똑같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많은 부분 이해가 되었다. 결혼 전이었다면 이하나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쟤 왜 저러나 싶었을 것이다. 이젠 여자에 대해 좀 더 알게됐달까?
요즘 <남녀탐구생활> 유의 프로그램들이 인기가 많은데 <페어러브>도 그런 장점 쪽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예쁘면 외계인과도 사귈 수 있다거나 여자는 무조건 잘해주면 된다 하는 대사들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어서 많이 웃었다. 여자가 종잡을 수 없는 대상으로 묘사된 부분도 절대 공감했다. 한편, 이하나가 간파하는 남자에 대한 부분도 들켰다 싶은 남자의 속성이고.
만약 <페어러브>가 요즘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특별할 것 없는 연애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나 두 배 나이 차 나는 친구 딸과의 로맨스로 풀어내면서 색다른 재미를 일궈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랑으로 그 둘을 바라보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페어러브>는 캐스팅이 훌륭했다. 안성기가 아니었다면 영화는 좀 더 일본영화스러운 위험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하나의 독특해서 귀여운 캐릭터 연기도 영화를 즐겁게 했으며 무엇보다 둘이 함께 하는 공간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사랑 따윈 필요 없어>의 김주혁과 문근영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을 듯!) 그 외, 카메라 수리점의 조연들(특히 연극 <사람을 찾습니다>에서 봤던 김정석과 가수 이승환 닮은 이현호. 낯익다 했더니 연극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에서 봤었다!)을 비롯한 안성기의 친구, 식구들 모두 좋은 안목으로 캐스팅 된 것 같다. <지붕킥>의 유인나의 깜짝 등장도 참 반가웠다. [★★★★]
※덧붙이기
1. 노래와 기타연주 실력이 뛰어난 이하나가 OST 중 'Fallen'을 불렀다. 웬만한 가수보다 낫다.
2. 촬영지로 쓰인 성신여대 곳곳에 들어가 본 경험이 있는 자로서 그 공간들이 반가웠다.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자로서 클래식 카메라에 대해 할애한 부분들이 좋았다.
3. 상영관이 너무 적다. 검색된 곳은 단 3곳. 관람환경 좋은 씨네큐브에서 볼 수 있어 다행이었으나 검색해보니 지방에선 전혀 상영을 안 한 다고. 어떤 속초 사는 분은 서울 와서 보고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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