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마지 아트센터 풀빛극장에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2.23∼오픈 런, 김재엽 작·연출)를 보다. 아내가 좋아할 만한 연극도 아닐 것 같고 또 학교 술자리에 간다고 해서 혼자 볼 작정이었는데 마침 아르바이트 중인 원희가 눈에 띄어 의사를 물었더니 제목도 묻지 않고 선뜻 가겠다고 했다. 원희하고는 결혼 전에 참 많은 문화생활을 함께 했는데 녀석의 좋은 점은 어떤 작품이든 "콜!"한다는 데에 있다.
처음 가보는 거지만 쉽게 찾을 수 있던 풀빛극장은 1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밖과 무대가 최단 거리로 연결되어 있고 화장실이 무대 한 쪽에 있는 것이 독특했다.
책으로 무대는 가득했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보도지침> …… 한 권 한 권 안구 스캔해보니 대충 모아진 책이 아닌 연출자의 소장품으로 보였다.
헌책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무대와 오래된 책 향기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연극이었다.(책으로 가득한 무대를 구상하고, 희곡을 써서 학교 문학상을 탔던 적이 있다) 여기에 내가 읽어보거나 들어보거나 관심 가는 책 얘기, 그리고 내 대학시절 창작문학 동아리 경험이 연극과 겹쳐지면서 묘한 떨림을 주었다. 또 있어 보이는 문구를 써서 책을 선물하던 추억도 떠오르고, 사귀던 여자에게 글 써서 줬던 책이 웬일인지 결혼 후에도 따라와 아내에게 부끄러웠던 기억도 떠올랐다. 인문사회과학서적 취향은 아니었지만 기형도는 내 대학시절을 지배했고 창작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었는데 연극에서 그의 시가 읊어지니까 창작, 문학과 함께 하던 대학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황지우, 김소진,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대학시절의 한 때로 데려갔다.
관객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라져 가는 것들에 아쉬워하는 사람들, 91학번 즈음의 30∼40대, 연기를 잘 하고 싶은 연극영화과 학생들, <페어 러브>의 깐족청년 이현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부 보러 와서 더욱 회자되고 장기 롱런 했으면 좋겠다. 좋은 연극이니까. [★★★★]
공연이 끝난 뒤 배우 또는 책과 함께하는 자유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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