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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기

한국의 노팅힐, 황학동 중고시장 데이트

by 22세기소녀 2008.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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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3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즐겨 찾던 곳은 청계천이다.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 헌책과 온갖 잡동사니들이 나를 황홀하게 유혹했다. 만원만 가져도 두 손 가득 무겁게 쇼핑을 할 수 있는 곳. 돌아가는 길엔 천원짜리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었더랬다.  

세월이 지나고 그 곳은 세계의 도시 서울이 부끄러워하는 곳이 되어 흔적을 감췄고 나도 불법 영화파일을 받으면서 그 곳을 찾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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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청계천 벼룩시장을 다시 찾게 되었는데 이유인즉, 여자친구가 필요로 하는 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림을 하는 친구라 누드 드로잉 참고서적이 필요했는데 내가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주겠노라고 했다. 사귀기 전의 그녀를 사로잡기 위해 뭐라도 잘 보여야 했는데 책을 찾는 것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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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에 늦은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길이가 짧아 귀여움을 더하는 하늘색 무스탕에 코르셋 미니스커트를 입고 벨벳구두를 신은 그녀는 이미 "어서 데이트하시죠∼" 하며 유혹하고 있었으니까. 핑크색 머플러와 벙어리장갑이 사랑스러움을 더하는 귀여운 그녀가 내 애인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듯 나는 마주 잡은 손을 더욱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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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여자들은 데이트코스로써 예쁘고 폼 나는 거리와 장소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연애 초기의 데이트 코스로써 황학동 벼룩시장은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노인과 생계를 등에 업고 사는 사람들의 놀이터인 황학동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마음이 따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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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들어간 헌책방에서 우리는 원하던 드로잉 참고용 누드사진집을 구할 수 있었다. 외국서적이었는데 그녀는 본문의 사진 몇 장만을 보고는 대번에 두 권의 사진집을 샀다. 매우 기뻐했는데 그것은 가격을 싸게 해줘서라기 보다는 앞으로 본인이 바라던 바를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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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둘러보다 나는 조카에게 줄 옛날 외국동전과 도라에몽 팽이를 샀고 틈틈이 엑시무스 필카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내 손이 차가워질까 봐 손의 온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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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가 반쯤은 취한듯 보이는 사내가 여자친구의 뒤를 보고는 "다리 정말 예쁘네"라고 혼잣말했는데 나는 용서해주기로 했다. 왜냐면 그것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곳은 한국의 노팅힐 벼룩시장이요, 우린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와 같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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