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3
애인 S는 일요일이면 잠만 잔다. 회사의 과중 업무 때문이다. 나는 그녀와 함께 전시회도 가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싶다. 데이트 불가능에 처음엔 칭얼댔지만 이젠 혼자 카메라를 들고 나가 영화도 보고 그림도 보고 온다. 오늘도 홀로 영상자료원으로 옛날영화를 보러갔다.
'수집,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라는 기획으로 시네마테크 KOFA에서 상영된 <일요일의 사람들(Menschen am Sonntag)>(로버트 시오드맥, 에드가 울머 연출)은 1930년에 만들어진 73분 짜리 독일무성영화로 일요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적으로 스케치한 작품이다.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섯 청춘남녀 즉, 택시 운전사, 모델, 와인 딜러, 영화 엑스트라, 레코드가게 점원은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일반인을 베를린에서 캐스팅한 것이라는데 그 때문인지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영화가 무척이나 새롭다.
남편이 남긴 약속 쪽지도 확인할 겨를 없이 일요일, 종일 잠만 자다, 저녁이 돼서 돌아온 남편에게 어서 데이트 준비를 하겠다며 사과하는 영화의 장면은 나와 S의 일화를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신기했다. 그리고 홍상수 영화에서나 즐겼던 인간들의 여전한 귀여운 짓거리와 변모하기 마련인 장소(베를린과 교외)를 소중하게 기록함은 가슴 뭉클케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또 이번 관람은 소실된 주요 장면을 복원한 프린트를 보는 것이기도 해서 앉아있던 자리에 금방석이 깔려있는 느낌이었다.
S가 피로가 살짝 풀린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400만 사람들은 다음 일요일을 기다린다"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과 출근길을 서두르는 월요일의 사람들 장면처럼 나와 S는 내일이면 또 전철을 타기 위해 뛸 것이며 일요일을 또 기다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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