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부산국제영화제서 먼저 만나고 싶었지만 이제야 <집결호>를 보다.
감독이 밝히기도 했지만 <집결호> 탄생에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무엇보다 제작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 아시아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가능함을 <태극기 휘날리며>는 보여주었고 변화를 모색하던 평 샤오강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진과 함께 <집결호>를 자신감 있게 만들었다. (오프닝 타이틀을 유심히 보면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약특수효과 정도안, 특수음향효과 김석원, 액션지도 박주천 같은 이름들이 그것)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러했듯, <집결호> 또한 유사 할리우드 방식을 취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중국도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관객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애국심과 전우애 등에 호소하면서 남성들의 판타지를 독하게 중독시킨다. 아비규환 속에 부하들을 챙기고, 피하기보다는 맞서고, 명예를 수호하고, 목숨 따위 국가에 바치는 휴머니즘은 전쟁 스펙터클과 함께 작동하면서 관객들의 심장에 기관총을 마구 쏘아댄다. (<집결호>는 중국에서 무려 7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흥행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특수효과팀의 활약이 컸다. <집결호>는 크게 전반부 전쟁, 후반부 드라마로 나눌 수 있는데, 중반까지 몫을 다한다. 그들의 손길이 만든 전쟁 스펙터클은 잘 만들어진 그 어떠한 전쟁영화만큼이나 훌륭하다. 사지가 사실적으로 훼손되는 생생한 전쟁 한 복판은 이미 한차례 유행이 있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식 촬영이 만나 전쟁에 대한 쾌감과 반성을 담는다. 훼손된 사체의 일부 장면은 평 샤오강의 미학과 윤리가 담겨 전쟁의 보도사진을 보는 듯한 전율을 준다. 화면의 질감과 아날로그 전투의 진수들도 전쟁영화 팬들을 사로잡을 만하다.
<집결호>는 2차대전 후 중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국민당과 공산당 간에 벌어진 국공내전(國共內戰)을 배경으로 한 실사에 근거한 이야기이고 소설로도 인기를 끌었던 소재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6.25를 배경으로 하면서 깊은 공명을 주었듯, 국공내전을 스크린으로 바라본 관객들의 울림은 각별했을 것이다. 특히, 오래된 역사 전투만 접하던 중국 관객이 현대전을 체험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이는 한국 관객들도 마찬가지. <집결호>를 통해 중공군의 눈으로 바라본 6.25를 체험하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후반부, 실종 처리된 부대원들을 찾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과정은 다소 지나친 감상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전쟁 속에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생명이 있었다고 말하던, 인간이 녹아 들어간 전쟁드라마였던 영화는 병사의 명예로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호소하는데, 마치 전략적으로 잘 만들어진 군홍보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국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평 샤오강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뒷맛이 떨떠름하다. [★★★★]
◆ 본 글은 씨네서울(리뷰 코너)에도 공동 게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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