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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기로 한 가와세 나오미, 사라소주(Sharasojyu)

by 22세기소녀 2008.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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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7
아트레온에서 제6회 여성영화제를 통해 <가족의 초상>을 보다.

우선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앞으로 기명할 영화 제목을 <가족의 초상>이라는 여성영화제 상영명 대신 원제인 <사라소주 (沙羅又又樹 ; Sharasojyu)>로 쓰겠다. <가족의 초상>이란 제목은 너무 유순하고 멋없고, 게다가 주제를 한정시키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다.

내가 아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녀에겐 부모가 없다. 그녀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는 이혼했고 그 때문에 그녀는 할머니에게서 키워졌다. 이 사실은 그녀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캬카라바아 ; Kya Ka Ra Ba A>에 자세히 나와있다.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던 그녀는 스물이 넘은 나이에 결국 아버지를 만나기로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만나기 전 죽고 만다. 그녀는 자신의 외로움과 고통을 문신을 통해 극복해 내려 애쓴다. (이 영화는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매진되지도 않을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나는 부산은행에서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1순위로 예매했었다.)

이렇게 부모가, 가족이 그리웠던 그녀가 장편 극영화 데뷔작으로 <수자쿠>를 만들었다. 이 작품엔 역시 그녀의 (개인사적)가족 문제가 잘 드러나 있다. <수자쿠>는 서서히 형체가 지워져 가는 서글픈 가족사다. 그녀의 장기인 다큐멘터리 기법을 절묘하게 활용한 이 영화는 가와세 나오미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읽게 한다. 이 영화로 그녀는 28세의 나이로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1997년. 깐느영화제 최연소 신인 감독상)을, 로테르담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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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신작 <사라소주> 역시 가족을 테마로 한다.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어느 날 실종되고 가족은 균열 직전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이 점은 아버지가 실종되고 그로 인해 가족이 흔들리는 전작 <수자쿠>와 닮았다. (감독의 고향인 나라현에서의 촬영, 떠난 누이의 아들을 키우는 오빠, 갑작스런 소낙비 등 <사라소주>는 <수자쿠>와 자매와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사라소주>는 가와세 나오미의 의지 변화를 읽게 한다. 시종 절망에다 그리움을 뿌려 놓던 영화는 후반에 들어 희망 쪽으로 나아간다. 가와세 나오미는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음을 다짐하고 새 삶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극 중 아버지의 대사를 통해, 역동적인 바사라 축제를 통해(정말 굉장한 에너지를 가진 장면이다), 그리고 감독 스스로가 분한 어머니의 새 생명 출산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사라소주>는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다. 그녀는 온 영화를 거쳐오면서 서서히 저 스스로를 일으킨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적 영화이지만 이것은 한편 관객과 소통한다. 결코 나와는 무관하지 않은 얘기가 몸 속으로 스며들어와 감동과 생각의 시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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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대단한 연출 공력을 자랑한다. 그녀의 카메라는 마치 (보이지 않는) 공기라도 잡겠다는 듯이, 그렇게 하면서 내면도 담겠다는 듯이, 결벽적이면서 자유스럽게 온 공간을 응시한다. 특히 핸드 헬드를 다룰 때는 카메라가 숨쉬고 있다. 골목을 천천히 뛰어 가는 그 카메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스틱 리버>에서 한 것보다 훌륭하게 감정의 흔적들, 시간의 흔적들을 따라잡는다. <사라소주>의 그 (절실함이 깃든)영혼으로 찍어낸 촬영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와 함께 내가 기억하는 가장 훌륭한 카메라 워킹이다.
 
34살에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일어섰다. 더 이상 그녀는 자기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을 것이다. 외부를 향해 두고 더 많은 얘기를 담고자 욕심 낼 것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된 일이다. 그녀의 팬으로써 눈물을 머금고 힘찬 박수를 보낸다. [★★★★★]

※덧붙이기
<사라소주>에 대한 글은 웹상에서 정성일 씨의 글 밖에는 찾지 못했다. 정성일 씨에게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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