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5
CQN명동에서 기자시사로 <스틸 라이프>를 혼자서 보다.
"지아장커가 훌륭한 이유는 오직 그만이 중국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장이모우 감독의 이 한마디가 <스틸 라이프>의 진가를 말해준다. 지아장커는 여전히 중국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산샤(三峽)' 지역 사람들을 천천히 카메라로 담는 오프닝 또한 지금의 중국이다. 갑판 위에선 카드 게임이 벌어지고 팔씨름을 한다. 담배를 나눠 피고 정겹게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낡은 선풍기도 눈에 띈다. 검게 탄 얼굴에는 근심 따윈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겹게 마주 앉던 이들의 모습도 머지 앉아 사라질 것에 감독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급속도로 진행되는 도시화 때문이다. 영화는 디지털 카메라로 그 아쉬움의 현장을 담는다. 영화의 실제 장소인 산샤 지역은 중국 인민폐 10위안에 나와 있을 정도로 명소. 하지만 상습적 홍수로 인해 중국 정부에서 댐 건설을 하고 있는 곳이다. 모두 잘 살기 위한 정책이라지만 대사에도 나오듯 "중국은 2000년 간 일궈온 역사를 2년 만에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러나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영화는 각기 아내와 남편을 찾으려 떠나 온 두 남녀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둘은 비슷한 시간, 비슷한 공간에 머물지만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들이 처한 현실, 그들 주변의 현실은 뒤늦게 자본주의에 합류한 중국의 근시안적 정책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터전을 허물고 터전을 허물면서 제 몸을 잃는다. 노동력이 넘친다고는 하지만, 포크레인이 아닌 인간의 모든 힘으로 목숨을 담보로 철거 작업을 한다. 영화에서는 이와 같은 현재를 "암흑가"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화 중간 중간 보여지는 허물어져 가는 마을에 UFO가 출몰하거나, 독특한 건축물로 보였던 것이 우주로케트로 발사되거나, 우주복 차림으로 폐허를 소독하거나, 전통 복장의 (과거)사람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하는 초현실적인 장면은 이러한 과도기에 있는 중국의 지금을 백일몽처럼 잘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중국 현대의 쓸쓸한 초상을 담아 냈다. 그러함에도 모든 허물어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위태로운 줄타기이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꿈을 이루려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아내와 아이를 찾을 수 있기에 그래도 삶은 계속될 만 하다고 말하고 있다. <스틸 라이프>는 200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
※덧붙이기
1. <플랫폼>, <임소요>, <세계> 등 2000년도부터 감독의 작품에 출연해 온 자오 타오와 한산밍(감독의 이종 사촌형. 실제로도 광부이다) 두 주연배우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은 산샤 지역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을 캐스팅한 것이다.
2. 공사장에서 소년이 열창하는 노래, '노서애대미(老鼠愛大米)'는 중국 히트곡으로 유덕화가 부른 버전으로 우리 귀에 익숙하며 이소은이 '사랑해요'라는 제목으로 불러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 본 글은 씨네서울(리뷰 코너)에도 공동 게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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