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11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영화제를 통해 <에바>와 <닥터 지바고>를 보다. <닥터 지바고>는 단 두 장면을 제외하곤 완전 새로웠다.
오늘도 50분에 한 대 오는 9711번 버스에 몸을 싣고, 상암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를 찾았다. 어제 <청춘의 십자로> 변사공연은 입석까지 받는 매진이더니, 오늘은 열댓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화광들이여, 모두 봄소풍 갔는가.
첫 영화는 128분 버전으로 복원된 <에바>. 조조 선착순 선물이라고 주는 연필 세 자루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에바>의 복원에 대한 자막 설명이 끝나고 잔느 모로님이 등장하셨다. <쥴 앤 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남자들을 사로잡으며 한 남자를 자멸로 몰고 간다. 자유부인으로서 온갖 폼을 다 잡는 잔느 모로의 에바는 현대의 여성들도 따라하고 싶은 충동이 일게끔 분위기 있다. 게다가 흑백의 맛이 더하니,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흐르는 영상으로써라도 틀어놓고 싶은 멋진 옛날영화가 된다. [★★★]
이어서 본 <닥터 지바고> 역시 불온의 멜로드라마. 제대로 사로잡혔다. 상영 1시간 뒤부터 소변이 마려웠지만 다녀올 수 없었다. 이젠 더 이상 <닥터 지바고>와 같은 미친 짓을 하는 감독도 제작사도 없다. 달리는 서사와 스펙터클의 강력한 펌프질. 그리고 오마 샤리프와 같은 관객을 세 시간 넘게 장악하는 완벽한 배우. (외모, 마음씨 전부 훌륭한데 시까지 잘 쓰는 의사라니!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딨니? 여성관객들에게 환상 팍팍!) 그래, 담배 이름에까지 나와주시고, 인정한다. 최근 <어웨이 프롬 허>에서 끝내주는 연기를 펼쳤다는 줄리 크리스티와 갈수록 매력적인 내조여인 토냐역을 맡은 제랄딘 채플린(챨리 채플린의 딸이란다)은 또 어떤가.
포화 속의 러브스토리, 가난한 사랑을 유독 좋아하는 나. '청춘의 십자로'가 여기에도 있었다. 아, 전쟁이 헝클어 놓는 운명이여. 왜 사람들은 결혼 다 하고 나서 뒤늦게 사랑에 눈뜨는 걸까. 결국 영화는 불륜무비였다. 조강지처 버리고 새로운 사랑에 눈뜨고. 미성년자가 중년 아저씨의 사랑놀음에 빠지고. 하지만 여기에 정치적 배경을 깔고 라라의 테마로 흔들어놓으니, 설득력 생기고 더 간절한 맛을 준다.
<닥터 지바고>와 같은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눈밭을 갈아엎고 달리는 기차와 얼음궁전처럼 거대 스크린을 통해야만 제 맛이 살고, 인터미션도 가지며, 영화관람 행위가 무슨 대항해를 하는 것과 같은 체험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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