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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M

by 22세기소녀 2007.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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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살인적인 마감을 끝낸 후, 아직 극장에 늦가을 가랑잎처럼 붙어있는 [M]과 만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직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강변CGV로 가야 했고, 얼마 전의 떠들썩함과는 달리 이미 스크린이 작은 상영관으로 옮겨져 있었고, 매진될까봐 비싼 수수료 내가며 예매를 했으나 관객이 고작 스무 명도 안되었지만,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음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미래의 영화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의 뇌에 회로를 연결해 꿈을 상영하는 극장. 나에게 있어 [M]은 그와 같은 상상이 결코 망상이 아님을 보여준 영화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M]에 당황해하지 않았고 황당해하지 않았으며 흥미롭게 보았다.

미미와 같은 존재에 대한 추억이 하나 있다. 이예림. 고등학교 시절, 전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모를 지니고 있던 그녀는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우연한 기회로 쑥맥이던 나와 친해지게 되었고 우린 고민을 나누는 편지와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나는 아직도 그 편지들을 비닐화일 안에 잘 간직하고 있으며 그녀가 녹음해가며 직접 연주한 피아노 연주 테잎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녀의 첫 이성과의 영화관람 대상자가 되었고 그녀는 나의 뮤즈가 되어 주었다. 10년이 더 된 훗날, 동창으로부터, 가장 보고 싶은 여자 동창이 누구냐는 질문에 예림이를 대답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예림이는 죽었다"는 것이다.

앞선 두 가지 개인적 경험은 [M]을 나의 영화로 만들어 주었다. 첫사랑과 미래의 영화. 이명세는 자신의 14년 전 영화 <첫사랑>(최종관객 수 5천 명도 안됐던 버림받은 걸작)을 꺼내 대중과의 소통을 다시 시도했지만, 아직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의 영화가 또 되고 말았다.



실제 기차가 다가오는 줄 알고 도망가던 최초의 영화 관객과 같은 관객들은 이제 없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와 책상에 앉는 것을, 문을 열고 책상에 앉는 것으로 보여주는 점프컷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아마도 이명세의 영화는 훗날 당황스럽지 않은 영화가 될 것이다.  

좋은 창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에게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돈 전액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진짜 예술가는 계속해서 자신의 창작 세계를 펼칠 수 있고 덩달아 한국문화계는 튼튼해 질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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