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용의주도 미스신> 기자시사회가 끝난 후, 같은 대한극장에서 <황금 나침반>을 기자시사로 보다. 이제는 두 탕도 힘들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대장정을 마친 후, 팬들은 '포스트 <반지의 제왕>'을 기대해 왔다. 2005년에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2006년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후 후속편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평단과 흥행 결과 또한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 1년 뒤, 이번엔 <황금 나침반>이 출사표를 던졌다. 실제로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고 <반지의 제왕>보다 낫다는 소문이 바다건너 흘러 들어왔다. 그러나 그건 학수고대해서 먼저 본 자의 들뜬 자랑일 뿐이다.
<황금나침반>은 영어권 국가의 아이들만이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중반까지 일방적인 대사가 많고, 무슨 이야기인지 쉽게 중심이 잡히지 않으며, 흥미를 끌만한 요소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곰 전사들의 록키 버전 결투 장면이 나오는 종반부나 가서야 지루함이 덜해지지만 <반지의 제왕> 1편의 두 배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인 것을 상기한다면 초라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황금나침반>은 결코 어른들이 즐길만한 것이 못된다. 우선 중반까지의 핵심은 '데몬'인데 데몬은 쉽게 설명하자면 <쵸비츠> <카드캡터 체리> 유의 일본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인공 곁에 따라다니는 수호동물쯤 된다. 수호동물이라 표현했지만 원래는 '분리된 자아'라고 설명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연출이 미흡해 그저 수호동물로서만 읽힌다. 사람이 이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쯤에선 성인 관객들은 보고있기가 좀 불편할 것 같다. 또 <황금나침반>은, 마찬가지로 이야기 중심이었던 <반지의 제왕> 1편에 비해 이야기의 깊이와 서사성이 약하다. 주인공을 위협하고, 또 도움을 주는 여러 종족과 보조적인 캐릭터들도 낯익은 친구들이라 신선함이 없다.
주목했던 주요 연기자들도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007 카지노 로얄>에 함께 출연했던 다니엘 크레이그와 에바 그린은 멋진 그림에만 머문 느낌이다. 시리즈의 운명을 쥔 아역배우 다코타 블루 리차드도 다른 대작 판타지영화의 주인공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인베이젼>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니콜 키드먼만이 <투 다이 포> 이후로 캐릭터 분석이 잘 된 악녀연기를 보여준다.
<황금나침반>도 포스트 <반지의 제왕>을 꿈꿨던 다른 판타지 대작들처럼 시리즈를 예고하면서 끝이 난다. 과연 예정된 속편 <마법의 검>과 <호박색 망원경>이 제작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된다면 영화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 계속될 것이고,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인 '더스트'의 실체가 풀릴 것이다. 그러나 과연 관객들은 그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에서 이미 그 이야기는 끝났다고 보지 않을까?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진부한 이야기를 재탕한 꼴이 되고만 <황금나침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반지의 제왕>처럼 3편이 완결된 뒤에는 더더욱 견고해질까? 앞으로 원작의 힘인 세계의 비밀을 풀어가는 모습을 보다 심오하고 흥미롭게 담아내지 못한다면 <황금나침반>의 운명은 활자로부터 떨어져 나온 순간, 방향을 상실한 꼴이 되고 말 것이다. [★★★]
※덧붙이기
주인공 라라의 데몬인 '판타라이몬'의 목소리는 프레디 하이모어(<어거스트 러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