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
서울극장 2관에서 기자시사로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보다.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하는 최근 한국영화는 겉 따로 속 따로인 경우가 많아졌다. 제목과 스틸이 그 주범. 과연 이 영화가 제목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은 경우가 허다하며, 티저라는 명목아래 본색을 훼손시키는 경우도 많다.
책임도 못질 거면서 고전 명작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뜨거운 것이 좋아>(마를린 먼로 주연의 1959년도 작품이 있다)도 뜨거운 척 하지만 미지근하다. 중학생 여배우 안소희의 선정적 티저이미지는 본편과의 연결고리가 약해 팬들의 원성을 살만하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사실 지금은 절판된 강모림의 만화 <10, 20 그리고 30>이 원작으로 제목이 말해주는 대로 각기 다른 나이대의 세 여성에 관한 사랑이야기이다.(영화에서는 30대신 40대의 여성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세 여성은 한집에 살며 서로 모녀, 자매, 이모의 관계를 맺은 가족이다. 이 구성원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각기 갖고 있는데 10대는 동성애에 대한 혼란, 20대는 자아찾기에 대한 고민, 폐경을 맞은 40대는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하고있다.
그러나 영화는 동성애, 자아찾기, 폐경이라는 세 키워드만을 심어 놓은 채 왕성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폐경'은 상투적인 접근에 머물러 연하남에 대한 러브판타지만 남겨 놓았고 '자아찾기'는 TV 유사극에서 익히 보아온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아미(김민희 분)가 조건이 완벽한 남자를 끝내 거절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는 나름의 이유를 대지만 그것은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시나리오 상에서나 그럴듯한 설득일 뿐이다. '동성애'도 좋지 않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질법한 십대소녀의 에피소드를 귀엽게 그려냈지만 좀 더 고민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루카스 무디슨이 '1988년'에 보여준 <쇼우 미 러브>와 비교해 훨씬 후진 생각을 하고 있다.)
5년 전, <싱글즈>로 대한민국 이십대 여성들의 성과 일상을 솔직하고 뜨겁고 쿨하게 보여주었던 권칠인 감독은 그동안 연출력이 많이 무뎌진 느낌이다. 세태를 반영해 영화를 보다 뜨겁게 해 논란도 만들고 공감도 산다면 좋았을 텐데, 여성들의 열정을 툭하면 키스로 봉합해버리곤 하면서 싱겁게 만드는 등 너무 조심스럽게 여성을 담아냈다.
그래도 영화에서 세 명의 뜨거운 연기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ing>에서 임수정 엄마로 분한 이후 5년 만에 안소희 엄마로 스크린으로 돌아온 이미숙은 엄마와 여성이라는 두 면을 건강하게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서프라이즈> 이후 5년 만에 영화를 찍은 김민희는 노희경 드라마를 통해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더니 물오른 연기를 이번 스크린에서 다시 한번 재확인 시킨다. 단, 그녀의 호연을 기이한 행동에서 더 발견하게 되는 점은 아쉽다. 원더걸스 멤버로 인기 절정에 있는 안소희는 고딩 소녀의 어설프고 풋풋한 느낌 그대로를 살려 합격점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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