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5
<뱅크 잡>을 보다.
은행이나 금고를 터는 영화, 혹은 영화 속에서 재물을 강탈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환영받아 왔다. 알랭 들롱의 영화들과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탈리안 잡>이 한국 관객들 기억 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고 흥행·비평적으로 성과를 얻은 최근의 <놈, 놈, 놈>과 <다크나이트>의 명장면도 강탈씬이다. 자고이래 재물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 그렇기에 머리를 모아 큰돈을 한꺼번에 챙겨 달아나는 영화는 언제나 흥미를 주고 실천(?)하지 못하는 관객들을 대리만족 시켜준다.
제목에서부터 정체를 드러낸 <뱅크 잡> 또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티켓을 끊고 투자효과를 볼 흥미로운 영화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 먼저, 영화는 전문가가 아닌 준프로와 아마추어들로 금고털이팀이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쉽게 해결되는 일이 있는가하면 불안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당연히 관객들도 함께 긴장할 수밖에 없다. 또, 영화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 고전적인 수법으로 미션을 수행한다. 지능적인 수법에 경탄할만한 일은 적지만 정면돌파처럼 누구나 생각해보는 땅굴 작전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마추어이고 고전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굴착기 소리를 내는가하면 무전기 송수신에 자신들의 정보를 흘린다. 그럼에도 금고를 터는데 성공한다. 보안 책임자들의 몇 차례 방문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일이 처리되는 것 같지만, 어떤 무능력과 허술함을 꼬집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렇게 읽는데는 금고강탈 이후 벌어지는 본격적인 두 번째 스테이지 때문이다.
<뱅크 잡>은 은행을 터는데서 환호하고 끝내지 않는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은행을 나가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금고에는 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보관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있던 관객들이 더욱 흥미를 갖게될 후반부가 펼쳐진다. 금고털이 일당들은 단순히 돈만 턴 게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것이다. 금고 속에는 경찰과 정부고위각료들의 추악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열려지면서 금고털이범, 경찰, MI5(영국군사정보국), 범죄조직 간 협박과 추적이 물고늘어지는 걷잡을 수 없는 대사건으로 커져간다.
<뱅크잡>은 MI5가 2054년까지 기밀로 분류하기까지 한 1971년, 런던 로이드은행 강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정보를 알고 본다면 또는 알게 된다면 이해가 안 가고, 심심할 수도 있는 부분이 줄어들 것이다. 은행 터는 씬이 과장되지 않은 이유, 기대됐던 액션 대신 스캔들과 음모가 영화를 차지하는 이유를 납득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제이슨 스테이섬이 몸의 활동보다 얼굴을 더 보여주는 연기를 한 이유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이탈리안 잡>에서 금고털이 재미를 만끽했던 스테이섬은 잘 생긴 외모(특히 남성적인 매력이 올올 박혀있는 얼굴의 절반을 덮은 수염, 멋진 정장 패션!)와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또 짧긴 하지만 액션 팬들을 위해 "역시 스테이섬!"이라 외칠만한 화끈한 액션을 선물한다. <바빌론 A.D.>를 들고 나온 빈 디젤이 엔진교체가 필요해 보이는데 반해 스테이섬의 액션은 여전한 스테미너를 자랑한다. 한편, 사랑할 수 없는 매력적인 유부남을 사랑한, 모델 출신의 섀프론 버로즈의 출연도 주목할만하다. 엠마누엘 베아르와 모니카 벨루치를 연상시키는 섀프론 버로즈는 스테이섬보다 큰 키와 아름다운 뼈를 드러낸 팔등신 매력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서비스하는가 하면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펼쳤던 연기를 그대로 이어 드라마의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
◆ 본 글은 씨네서울(리뷰 코너)에도 공동 게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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