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
일요일. 깐느영화제 수상결과가 궁금해 늦잠 자지 않고 TV부터 켰다. 컴퓨터로 확인하는 게 빠르지만 영상과 함께 기쁘고 싶었다. <하하하>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았다. 하하하. 홍 감독님, 해내셨구나. 홍상수 감독은 그동안 <강원도의 힘> <오! 수정>이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것을 비롯해 총 6번 깐느영화제 단골이 됐는데 이번에 드디어 그의 영화세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주목할만한 시선'은 냉정하게 말해, 경쟁에 오르지 못한 부문이다. 그러나 도리어 이 부문에 흥미로운 작품들이 더 많다. 이번 영화제만 해도 장 뤽 고다르, 지아장커 등이 홍상수 영화와 함께 상영되었다. 쓰레기 같은 영화가 경쟁부문에 오르는가 하면 걸작이 주목한만한 시선 부문에 머물러있기도 한다. 어떤 감독들은 자존심 때문에 이 부문에 초청 받으면 출품하지 않기도 한다.
이번 <하하하>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장인 클레어 드니가 '홍상수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오래된 술친구'로 씨네21 특집(752호)을 보면 그녀의 홍상수 영화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고 보니 예지원의 뒤늦은 깐느 방문은 우연이 아니고 귀뜸이 있었던 게 아닐까?) 뭐, 이런 사실이 수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 것이다. 홍상수 영화는 진작에 수상됐어야 할 빼어난 예술이니까.
나는 <하하하>를 조조로 상영하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 일산 롯데시네마에서 봤다. 40여분 거리에 떨어진 영화관이었는데, 겨우 봤다. 분명 전날 인터넷으로 일산CGV 상영시간표를 확인했는데 다음날 가보니 <하하하>를 전혀 상영하지 않고 있었다. (영화는 5월 6일 개봉했고 나는 5월 9일에 관람했다) 억울했지만 화면 캡쳐도 해두지 않은 상황이니 하소연 할 길이 없었고, 대신 공복인 상태로 열심히 뛰어 근처 롯데시네마에서 다행히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천천히 영화를 볼 수도 있었지만 씨네21에서 <하하하> 개봉에 맞춰 홍상수 특집을 무려 80여 쪽(반 권 분량)에 걸쳐 싣는 바람에 좀 더 빨리 영화를 봐야만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기사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씨네21의 미친 기사 덕분에 영화를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홍상수 영화는 늘 일정한 재미를 주기 때문에 즐겁다. 이번 <하하하>에서도 통영을 무대로 싱겁고 유치한 듯 보이지만 삶에 있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농담들이 주사를 놓는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일침을 놓는 홍상수의 영화가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유명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줄을 서 계속되기를 고대한다. [★★★★]
※덧붙이기
문소리의 연기는 이제까지 본 중 최고다. 또 김영호 아니었음 이순신 역할 그 누가 어울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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