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7
용산CGV에서 기자시사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다. 세상에나, 부지런을 떨지 않았더라면 항의대열에 있을 뻔했다. 한국인, 일본인, 이상한 놈들이 표를 받기 위해 일찌감치 줄을 서고 있었던 것.
이것저것 해보는 김지운은 '우' 이상의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참 잘했어요'가 없는 그가 믿음직한 배우, 쓸만한 자본을 지원 받아 이번엔 웨스턴을 만들었다. 갑자기 웬 웨스턴이냐. 시장에 불시착한 느낌을 주지만 김지운은 그 누구보다 유행에 민감하고, 이번에도 세상에 있던 걸 제 맛대로 비튼 것이어서 힘 빠진 한국영화에 긴장을 주고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은 알려진대로 200억 짜리 대작이다. 이는 운명의 영화라는 얘기. 천만관객의 신화를 재현해야 한국영화를, 투자·제작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영화는 각 나라, 팬서비스를 위해 여러 버전으로 공개되고 있으며(기자시사회 이후 대평원 장면에서의 태구의 계곡 장면을 삭제하는 등 친절한 편집은 계속) 이전 연출작과 비교해 보다 상업적 코드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불편함이 덜해졌다. 완전한 흡수가 가능해지면서 수동적 관객이 되어버린다. 만주에 대한 상상력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차츰 알려지면서 신선도가 떨어졌고 그 때문인지 새롭게 했다는 것조차 진부한 덧칠로 보인다. 무엇보다 놈, 놈, 놈의 사연은 없고 스타일만 있다보니 찰나의 멋진 감탄과 웃음만 터져 나올 뿐이다. 조바심 난 관객들은 어서 다음의 멋진 장면을 보고싶을 뿐인데 리듬을 끊고 흥미롭지도 않은 설명을 하곤 하니 달리고 싶던 관객은 승차감이 좋지 않다. 한편, 아날로그적인 질감은 좋지만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적벽대전>과 비교했을 때 CG면에서 아쉬운 점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
세 놈 중 정우성의 면면은 마치 광고의 한 장면 같다. 비슷한 성격의 영화를 찍어봐서인지 잘 놀고,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성 팬들이 한동안 가파르게 늘 듯. 반면 이병헌은 지나치게 연기를 잘 하려해 나쁜 놈 캐릭터가 잘 살지 못했다. 송강호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잘 살려내 시종 웃음을 유발하며 극을 활기차게 한다. 단, 아쉬운 점이라면 코미디뿐 아니라 그 이면의 서늘함도 함께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영화에서 뒤로 눕던 몸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흘러나오는 대평원 추격씬이다. <킬빌>에서도 재미를 본 음악을 길게 깔며 공들인 이 베스트씬은 <킬빌>의 클라이맥스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신난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김지운은 거기까지다. 그렇지만 대작영화를 만들 수 있는 김지운을 확인했으며 또 한국영화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더 확인했다. 이 참에 맥이 끊겼던 만주웨스턴을 몇 편 더 보고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과연 관객들은 <놈놈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의 활약을 칭찬하는 배우예찬? 익숙한 것을 한국적으로 보는데서 오는 장르적 쾌감? 아니면 새로울 것 없음에 대한 실망? <장화, 홍련> 이후 또 한번 치열한 네티즌전쟁이 예상된다. [★★★]
※덧붙이기
1. 이만희의 만주활극 <쇠사슬을 끊어라>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로부터 영화가 출발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제목은 <석양의 무법자>의 영제인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 가져왔다.
2. 창이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이다. 영화 속 영화에서 경찰이 이름을 묻자, 창이 부하가 창이에게 "태구입니다"라고 답하는 유머가 들어있다.
◆ 본 글은 씨네서울(리뷰 코너)에도 공동 게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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