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연속 참여하고 있는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구교구>(정보서, 2006)를 보다. 아내와 함께 보는 거라 우선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를 골랐다. 대박이었다. 아내가 상영 도중 엄지를 들었다. 시작이 좋아서 나머지 일정도 쾌청이 예상된다.
요즘 홍콩영화 혼자보기 아깝다. 총과 형사가 등장하는 액션영화가 옛 홍콩영화 전성기의 질감을 뛰어 넘는다. 여전히 스타일리쉬하지만 보다 정제된 맛이 있다. 각본에 설득력이 있으며 연출 또한 힘이 넘친다. 2009 부천판타스틱영화제서 만난 <비스트 스토커>와 오늘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서 발견한 <구교구>가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예이다.
<구교구>에서 가장 빛나는 점은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두 세계를 동정·연민케 한다는 점이다. 관객의 응원은 당연히 일방적이지 않다. 형사의 애환을 보면서도 범죄자의 안녕을 바란다. 영화는 심혈을 기울여 두 축의 균형을 잡는데 공들이고 관객은 스릴을 만끽하며 끝장을 보고자 한다.
아마도 <구교구>는 진관희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료배우(와)를 찍은 음란한 사진(동영상) 유출사건으로 인간실격과 배우생활에 치명타를 입은 진관희는 <구교구>에서 출중한 연기와 인상적인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과연 배우를 연기로서만 판단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으로까지 확대해 판단할 것인지 흐릿해진다. 적절한 예는 아닐 테지만 설경구 또한 송윤아와의 결혼으로 질타를 받았고 <해운대>에서의 혼신의 연기로 더 이상 돌을 던지지 못하게 됐다.
<구교구>를 보는 내내 이 영화는 분명 올해의 발견이다, 별 다섯을 아낌없이 주겠다 맘먹게 했다. 그러나 걸작은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못하는 법. 감독은 마지막 몇 분을 참지 못하고 사족을 달면서 완성도에 흠집을 냈다. 조금은 특이한 방식인 새 생명의 잉태를 보여주고자 하는 유혹을 끝끝내 참지 못하고 상투와 과잉의 신파를 더해 실소케 한다. 영화의 빛깔이 바뀌는 라스트는 더 짧을수록 좋았다. 사람의 욕심이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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